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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 ihup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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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8 11:4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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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땅과 같은 마음밭 (2012. 9. 22)
설교일 : 2012년 9월 22일(토) 전교인 월삭새벽기도회
본 문 : 마태복음 13:18~23
제 목 : 좋은 땅과 같은 마음밭

이 새벽에 기도의 자리를 찾은 여러분들,
특히 어린 심령들 가운데, 하나님의 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복하며, 축원합니다.
새벽은 시작이며, 처음입니다.
시작을, 처음을 누구와 함께 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합니다.
날마다 시작되는 하루의 첫 시간을 늘 우리 주님과 함께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이어지는 새벽기도 말씀을 계속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13:1~에 나오는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의 비유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입니다.

1. 첫 번째 마음밭은 길 가와 같은 마음밭이었습니다.
심령이 길 가와 같이 단단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듣고 깨닫지 못해서
금새 악한 사람이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거두어 간다고 했습니다.

2. 두 번째 마음밭은 돌 밭과 같은 마음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
돌짝밭과 같아서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곧 넘어지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 세 번째 마음밭은 가시떨기가 많은 밭과 같은 마음밭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뿌리를 내리는 것 같아도,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결실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마음밭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결론입니다.
우리의 마음밭은 길가와 같아서도, 돌밭과 같아서도, 가시떨기밭과 같아서도 안되고,
좋은 밭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마음의 좋은 밭의 기준을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1. 듣는 것..
2. 깨닫는 것...

말씀을 받을 때 잘 듣는 것이 좋은 마음밭의 기준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냥 생각할 때, 귀가 있으면 다 듣는 것 아니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귀가 있다고 다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귀가 있고, 들려진다고 해서 다 듣는 것이 아니고,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특성이 있습니다.

또 위의 세 가지 마음밭처럼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강퍅한 마음이면 한 귀로 들어도 한 귀로 흘려버립니다.
또 말씀을 들어도,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이 생기면,
어떤 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좋은 마음밭의 첫 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이 걍퍅해서도 안되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나도 끝까지 말씀을 들으며,
세상의 염려도 내려놓고, 재물의 유혹도 잘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귀로, 마음으로, 영으로 잘 듣고 계십니까?
집중해서, 잘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좋은 마음밭을 지닐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말씀하신 좋은 밭의 조건은 들은 후에 깨닫는 것입니다.
듣고 나서 눈만 껌뻑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묵상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소가 일단 먹은 음식을 되새김질하여, 영양분으로 만드는 것처럼
들은 말씀은 묵상하고, 깨달아 그 말씀이 내 삶의 영양분이 되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한번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고, 삶으로 옮겨질 때까지, 계속, 반복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
곧 묵상할 때 우리는 말씀을 잘 깨닫게 되고,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대부분 이렇게 믿음생활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참 많습니다.
예배당에 앉아 말씀도 듣고, 성경 앞에 앉아 말씀도 읽지만,
내 앞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말씀을 겸손하게 듣고,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마음으로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오늘도 좋은 말씀듣고 돌아간다...하고는 곧 들은 말씀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나이나 기억력과는 별로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요,
깨달아 삶으로 옮겨내려고 하는 우리의 의지가 없기 때문이요,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몸부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엊그제 아는 목사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목회자로서 답답한 심정을 나누고, 기도부탁도 하려고 전화를 하셨습니다.
지난 수요일 예배 말씀이 평화와 화해에 관한 말씀이었답니다.
말씀에 입각하여,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릴 뿐만 아니라,
성도 상호간에, 사람과 사람 간에 평화와 화해, 화평을 누려야 함을 선포하셨답니다.

그런데 그 예배가 끝나자마다 성도 중에 한 분이 피아노 반주하는 분에게 다가가더랍니다.
무언가 평소에 마음에 안든 부분이 있었는지,
예배 중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이 목사님은 집으로 돌아가는 성도들 배웅을 위해서 예배당문에서 인사를 하는데,
채 1분도 지나지 않아 그 성도님이 반주자에게 큰 소리를 내며, 상처가 되는 말을 막 쏟아내더랍니다.
아직 예배당에는 상당수 성도들이 있었는데,
예배당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그 분과 다투시더랍니다.
사람들이 말리고, 목사님이 가셔서 그만 두시라고...
그런데 그 분이 예배당을 나와서도 동네가 떠나가라고 계속 소리를 지르며 집으로 가셨답니다.
반주하는 집사님은 다음 주부터 교회에 안 나오겠노라고 목사님께 말씀드리고 돌아가시더랍니다.

두 분이 집으로 돌아가고, 텅 빈 예배당에 서 있는데,
아니 1시간 뒤, 하루 뒤도 아니고, 말씀을 듣자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조금 화도 나고, 한편으로는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부끄럽기도 하고,
제대로 말씀을 전하지 못한 자신 탓이라고 생각도 하며, 착찹한 마음으로 자리에 앉아 기도하셨답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허탈감과 죄책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씀...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아니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알고 보면 저나, 여러분이나 그 분처럼 큰 소리를 내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이미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은 그런 우리에 대한 기대가 있으십니다.
길가와 같은 심령이라고, 죽을 때까지 길가와 같은 심령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내 심령이 길가와 같고, 돌밭과 같고, 가시떨기밭과 같다할지라도
개간하고, 돌과 가시를 걷어내면, 우리의 심령은 얼마든지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세상에 원래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밭이라고 다 같은 밭이 아니듯이,
우리의 심령이 다 같은 심령이 아닙니다.

마음의 걍퍅함을 부드럽게 개간하고,
환난이나 박해를 견뎌내며,
세상의 염려를 내려놓고, 재물의 유혹을 물리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잘 듣고, 깨달아 귀한 열매를 맺는 심령으로 변화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 일은 우리의 수고도 필요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새벽을 깨워 기도의 자리에 나온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밭을 옥토로 가꾸십시다.
그래서 어떤 말씀이 떨어져도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 30, 60, 100배의 결실을 맺도록 하십시다.
그런 삶이 우리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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